사회ㆍ문화적 실천 행위로서의 작문의 특성

작문 연구사에 있어서 1970 년대를 작문의 인지적 과정을 규명한 시기라고 한다면 1980 년대는 작문 과정에 있어서 사회적 맥락의 역할을 규명한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작문 이론에 있어서 사회적 측면이 크게 부각된 외적 요인으로서는 작문 교육 분야에서의 범교과적 작문 프로그램의 성행을 들 수 있으며, 내적 요인으로서는 인지주의 작문 이론이 지닌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대두를 들 수 있다.

작문의 과정에서 필자가 당면하는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자의 사고 과정뿐만 아니라 필자가 처한 작문 상황을 철저하게 탐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필자는 실제로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문화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하여 난해하면서도 문제투성이인 사고의 통로를 헤쳐 나가면서 상충되는 문제 상황과 끊임없이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예상하는 교사의 기대치와 교사의 실제 기대치는 매우 상반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학생들이 글을 쓰는 상황에서 어떤 내용이 사실 중요한 것인지, 무엇이 적절한 논거 혹은 타당한 내용인지, 어떠한 형식으로 글을 구성해야 예상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예들은 작문 능력이 인지적 기능과 함께 사회적 기능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작문 연구 분야에서 사회적 기능 및 인지적 기능을 동시에 중시하는 연구 풍토가 조성된 데에는 언어 발달에 관한 사회역사적 관점을 주창한 Vygotsky (1978)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Vygotsky에 의하면 모든 기호 체계의 주된 기능은 한 개인과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의 규제 및 조정에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에 있어서 언어는 사회적 상호작용 활동을 통한 인지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작문 능력의 발달에 관한 사회인지주의적 작문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인지심리학의 한 분야인 사회인지 (social cognition) 이론 역시 사회인지주의 작문 이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학교 작문의 경우 교사는 학생들이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하여 학생들의 사고에 관한 추론을 하거나 사고의 질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회인지주의 작문 이론가들은 학생들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사고 전략은 상호 이질적인 것으로서 나름대로의 경험과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작성한 텍스트만을 보고 그 텍스트를 작성한 사고의 사회적 맥락을 보지 않으면 작문 수행 능력을 결정짓는 인지 작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Hull & Rose, 1990). 텍스트의 실질적 의미는 필자 자신과 타인 사이, 개인과 사회 사이의 지적이며 정서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협상과 해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회인지주의 작문 이론가들 중의 대표적인 인물인 Miller(l984)는 의미의 구성 형식으로서의 장르를 텍스트의 형식이나 본체로 보지 않고, 순환적 상황에 근거를 둔 전형적인 수사론적 행위, 즉 사회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인지주의 작문 이론가들은 작문을 학문 공동체 내에서의 특정 활동에 내포된 일상적 인지 (situated cognition)로 규정하기도 한다(Huckin & Berkenkotter, 1993).

작문에 있어서의 사회적 맥락의 역할에 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개별 필자는 텍스트 생산의 실제적 조건, 필요, 동기 등이 사회적 맥락에 반응하게 되며, 텍스트 공동체는 이들 개별 필자가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근거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문제 및 표현의 목적 등에 대하여 일정한 조건을 부여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개인의 인지 작용과 사회적 맥락은 변증법적인 상호 영향 관계에 놓이게 된다 (Myers, 1991). 또한, 텍스트는 사회적, 역사적, 인지적, 수사론적 활동의 복합체인 사회적인 맥락에 의하여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됨과 동시에, 텍스트는 주어진 텍스트 공동제의 다양한 활동과 맥락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Bazerman, 1991).

언어 사용자로서외 필자는 텍스트 공동체에 속한다. 필자는 단순히 텍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공동체 내에 이미 설정되어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텍스트에 관한 작업, 즉 의미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필자는 단순히 예상 독자에게 매시지를 전달하거나 어떤 영향을 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만든 텍스트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 (Fraigley. 1985). 그런데 텍스트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작문 행위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은 작문 연구가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즉 필자 개인은 사회척인 존재인 동시에 개인적인 존재이지만 사회 집단은 결코 개인적인 존재일 수가 없다. 따라서 개별 필자가 자신이 속한 텍스트 공동체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텍스트 공동체로서의 집단이 필자 개인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마치 인지주의 작문 이론에 있어서 사고를 텍스트로 번역하는 기제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과 상통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작문 연구가들 언어 생산 및 담화 분석에 관하여 다른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대화자 쌍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담화는 일종의 상호작용적 협상의 과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와 독자 사이에서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말 주고받기와 같은 상호작용이 이후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필자와 독자 사이에서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의미의 전달 및 공유하고 있는 지식의 변형과 같은 상호 작용이 이루어진다. 분명히 텍스트는 필자가 무언가를 전달하기 원하거나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한다고 해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텍스트의 구성과 그 방향은 필자 자신의 의도 및 목적과 독자의 기대 및 요구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필자의 의사소통적 요구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필자의 의사소통적 요구는 작문 행위의 과정에서 작동할 수 있는 상호작용적 변인들, 즉 필자가 예측하고 해석하는 독자의 기대, 독자에 대한 선행 의사소통의 영향, 필자가 지금까지 작성한 텍스트의 영향, 필자가 예측하는 독자의 반응, 의사소통을 시발하는 맥락 등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사회인지주의 작문 이론가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작문의 사회적 상호작용 모형 (Nystrand, 1989)에서는 작문의 개념을 필자의 목적과 의미를 텍스트로 번역하는 과정인 동시에 필자와 독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미에 대한 협상의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텍스트를 필자의 목적과 의미를 번역한 결과물로서 뿐만 아니라 필자와 독자의 목적과 의미를 중재하는 의사소풍의 매개물로서 그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 모형에서는 숙련된 필자가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로서 텍스트의 시발, 텍스트 생산의 유보. 텍스트의 정교화 동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텍스트를 시발한다는 것은 필자와 독자 사이의 상호 작용을 가능케 하는 기본 골격, 즉 의사소통의 상황을 명료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일단 숙련된 필자가 의사소통의 상황, 즉 일시적으로 공유된 사회적 실체를 시발한 다음에는 새로운 정보의 도입을 통하여 텍스트를 정교화 해 내간다. 만약, 새로운 정보가 필자와 독자의 상호작용을 위협하게 되면 텍스트 생산을 일단 유보하고 새로운 정보를 사회적 맥락에 적합하도록 조정함으로써 텍스트의 균형성을 유지해 나간다. 필자와 독자 사이의 균형성이 확보되면 숙련된 필자는 장르와 주제와 내용 면에서 텍스트를 정교화해 나감으로써 최종척인 텍스트를 생산하게 된다.

사회구성주의 작문 이론가들은 문어활동 능력을 규정함에 있어서 텍스트의 자질보다는 실제적인 담화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문어활동은 사회적 상황에 기초한 문제 해결 과정으로서 텍스트적 측면과 사회인지적 측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다. 언어 사용 활동은 의미를 구성하는 순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문어적 행위는 유목적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변형하는 구성적인 인지 과정에 비롯되며,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서는 의미를 구성하는 활동이 의미 협상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의미 협상은 개별 독자와 필자가 직면하는 대립적 요구, 서로 다른 요구와 목적과 제약, 그리고 가능성들 중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어활동은 수사론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의 일부로서 행해지는 활동으로서 한 개인이 보유하는 일반화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며, 기호 해독 및 인입을 위한 일련의 기술적 기능들의 집합도 아니다. 문어활동은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목적으로 읽기와 작문을 이용하는 일련의 행위와 교섭 작용의 집합이다. 문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텍스트를 해독하거나 생산하는 것 이상의 일, 즉 담화 활동을 한다. 문어활동 능력의 효과적인 신장을 위하여 교육적 차원에서 중시해야 할 사항은 유능한 필자나 독자가 능동적인 담화 활동 과정에서 활용하게 되는 사회인지적 전략이다. 문어 활동을 성공적으로 하는 데 있어서 다음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첫째, 담화 활동을 하는 데 기본이 되는 관습과 기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주어진 과제와 연관되는 읽기 및 작문을 위한 일련의 문제 해결 전략을 갖추어야 한다.

의미의 구성 방식을 설명하는 관점으로서 재생산, 대화, 협상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작문의 과정에서 필자는 기존의 혹은 이용 가능한 의미를 재생산함으로써 의미를 구성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 구성 과정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주장은 논쟁의 소지가 많다. 읽기에 대한 구성주의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독자는 다음 세 가지 수단, 즉 텍스트와 문화적 바탕에 기초한 기대에 강한 영향을 받는 과정과 기존지식 등 세 가지 수단을 통하여 정보를 선정하고 조직하고 연결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의미를 생성한다. 다른 의미를 재생산함으로써 의미를 구성하는 일은 학습, 텍스트 간 전이, 문화의 전승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경우에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의 구성을 재생산으로 보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실체의 재생산이 가능한 것인가? 텍스트의 내용이 있는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재생산되는 것인가? 텍스트와 간텍스트는 독자와 필자가 실제로 구성하는 의미에 대한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가? 재생산 이론은 의미 구성 현상을 부분적으로만 설명한다는 약점을 지닌다.

재생산이 일원적인 의사소통임에 비해 대화와 협상은 이원적인 의사소통이다. 사회적 대화주의 관점에서 보면, 의미는 절박한 동기나 일정한 논리에 따라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등한 자격을 지닌 개체간의 비규제적 상호작용으로부터 생성된다. 사람들은 집단적 생활을 영위해야 하므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과 행동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정해야 한다. 모든 텍스트의 의미 구성이 갖는 기능은 대화에 의해 기술되는 자유롭고도 협동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대화주의적 관점은 개인의 인지와 주체성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부적절한 면이 있다. 대화로서의 의미 구성 결과는 결과적으로 개인의 마음속이나 개인의 독특한 표상에 있지 않고 상호작용의 순간이나 대화의 순간 혹은 공기 중에 존재하게 된다. 의미 구성의 주체가 없는 대화주의 모델은 비교적 비규제적 과정, 즉 의미가 일련의 가능성의 집합 내에 존재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배양되고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대화로부터 산출되는 의미는 공유된 이해의 침전물이며 공유된 상식의 축적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협상적 의미는 어떤 규제적 힘에 직면하여 딜레마에서 탈출하기 위한 목표 지향적 노력에 의하여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협상적 의미의 구성 과정은 필자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필요조건에 직면했을 때 작동한다. 첫째, 의미 구성의 과정에서 압력을 받거나 제약이나 대안을 변환해야 하거나 여러 가지 목적들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때 작동한다. 둘째, 필자가 문제가 있는 인지적 수사론적 상황을 관리하거나 협상할 필요성에 대하여 주의를 돌릴 때 작동한다. 협상은 행위를 형성하는 복수의 소리, 즉 과거 경험과 현재 기회의 소리, 지혜의 소리, 요구와 판단의 소리, 가능성의 소리, 담화 관습의 소리 등에 대한 반응으로서 목표 설정, 제약 부과, 적정 언어의 제안, 보편성의 추구, 기회의 현시, 적응에 대한 요청, 대안의 제시 등과 기능을 한다.

협상을 통하여 구성되는 의미는 잠정적인 해결책이며 다양한 소리에 대한 반응이다. 복수의 소리에 대한 반응으로서 협상적 의미는 소리로 드러난 언어나 아이디어의 이질적 혼성물 이상의 것이다. 협상적 의미는 복수의 목표와 제약과 전략과 언어를 다룸으로써 얻어진 구성물이다. 아이디어와 의도와 언어에 대한 협상적 의미 망은 형성적 힘에 대한 단순 반응으로써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적 힘에 대한 선택적 반응으로써 주성되는 것이다. 잠정적 해결책으로서 협상적 의미는 어떤 소리들을 밝히거나 그 소리들에 대하여 행동을 취하거나 저항하거나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거나 변형하거나 종합하거나 재해석함으로써 협상의 범위 내에 있는 소리들에 대해 반응한 결과이다. 잠정적 해결책으로서의 협상적 의미는 텍스트의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날 수 있는 다른 해결책과 일관성을 갖지 못할 수도 있고 불안정할 수도 있다. 그 해결책은 미해결의 갈등이나 모호성을 잠복시킬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한 시점에서는 억압되었던 소리가 다른 시점에서는 다시 부상할 수도 있다.

최근의 작문이론가들은 작문 활동이 이루어지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맥락을 중시하고 있다 (Apllebee, 2000). 필자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맥락이 제공하는 자원과 요구와 연관하여 적합한 의미를 구성해 내기 위하여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어떤 담화 공동체 혹은 담화 영역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영역 내에서의 행동 양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의 적절한 사용에 관한 지식, 구조적 지식, 전략적 지식 등은 물론이고 해당 영역에 적합한 내용 지식과 절차 지식, 해당 영역 내에서 진행되는 담화에 참여하는 데 무엇이 중요하고 흥미 있는 것인지에 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학생들이 중요한 담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담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효과적인 참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작문 활동을 통하여 해당 담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며, 담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흥미와 확신감을 줄 수 있도록 정체성을 지니고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사회적 세계와 문화적 세계에는 중요한 담화가 매우 많이 있기 때문에 작문 능력의 발달은 다양한 담화의 장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개발해 나가고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방식으로 담화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을 학습해 나가는 일과 직결된다.